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을 위한 과제 (대구대 김동윤 교수)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을 위한 과제
김 동 윤(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디지털 전환, 그 의미와 중요성
우리 사회에서 디지털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공간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으며, 방송은 이 같은 디지털화의 물결이 가장 거센 시공간이다. 방송 영역의 디지털화는 프로그램의 제작과 송출, 수신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져 왔는데, 2012년 12월 31일 오전 4시를 기하여 전면적으로 실시되는 디지털 전환은 방송의 디지털화를 알리는 본격적인 신호탄이 될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의 입법화와 그에 따른 논란을 뒤로 한 채, 2010년은 2012년 디지털 전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는다는 취지로 울진, 강진, 단양 지역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전환 시범사업이 실시되었으며, 2011년 5월부터는 제주도 지역을 대상으로 한 시범사업이 실시될 예정이다. 그러나 2012년 디지털 방송을 위한 전환 작업은 지상파방송 직접 수신세대의 적극적인 참여가 전제되지 않으면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지금까지 추진되어 온 공급자 중심의 디지털 정책과는 본질적으로 그 성격을 달리한다.
디지털 전환 시범사업을 실시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2012년 디지털 전국 본전환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시행착오를 예방하기 위한 예비사업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이 단순한 방송기술의 혁신일 뿐 아니라 향후 우리나라 방송산업의 구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매우 중요한 이슈이며, 동시에 시청자의 보편적 접근권을 더욱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정책적 의미를 가진다는 점에서 시범사업을 통하여 도출되는 문제점과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을 어떻게 선제적으로 구비하느냐 하는 것은 디지털 본전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기 위한 필수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디지털 전환이 처음 논의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이지만, 1997년 지상파 DTV 전송방식을 결정한 뒤 2000년 방송위원회가 디지털 전환 계획을 발표했음에도 그 실질적인 논의는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디지털 전환 특별법에 따라 ‘2012년 12월 31일 새벽 4시’로 전환 일정이 잡히면서, 본전환을 위한 세부계획이 수립되기 시작했으며, 이어서 2008년 ‘지상파텔레비전방송의 디지털 전환과 디지털방송의 활성화에 관한 특별법’이 입법되면서 기본계획이 수립되고, 이에 따라 4개의 아날로그방송 종료 시범사업 지역(경북 울진군, 전남 강진군, 충북 단양군, 그리고 제주시)이 선정되었다.
선진국의 디지털 전환 추진 사례에서 보듯이 국가마다 디지털 전환 모델은 다양하다. 이는 각국의 DTV 전송방식, 송수신 환경, 시청자의 욕구, 법과 제도적 틀의 방향성, 정책적 목표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 디지털방송의 성공적 전환을 위해서는 선진국의 시범사업과 본전환 모델을 참고하되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형 전환 모델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우리나라 디지털 전환 시범사업의 의미
지상파의 아날로그 방송 종료와 이를 대체하는 디지털 전환은 기술적, 산업적, 정치경제적 난이도가 매우 높은 정책이다. 2012년 본전환을 2년 여 앞둔 시점에서 시범사업이라는 가교적인 과정을 거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디지털 전환 시범사업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의의를 가진다.
첫째, 2012년 본전환에 앞서 실시하는 예비고사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전국을 단위로 한 아날로그 지상파TV 강제 종료 사업의 성공이 정부나 방송사업자, 그리고 시청자와의 유기적 협력체제에 기반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고, 디지털 전환의 실패는 곧 사회적 혼란과 정보불평등을 초래하며, 나아가 국책사업 추진 주체인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 실추로 이어지기에 예비사업을 통해 나타난 문제점을 토대로 본전환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둘째, 디지털 전환의 성공은 기술적 하드웨어나 설비의 단순 교체를 통해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적 관심을 효과적으로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시범사업을 통해 개발된 대국민 홍보 및 인지율 제고 등은 본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
셋째, 우리나라의 디지털 전환은 전국을 지역별로 순차 종료하는 방법을 채택한 대신, 미국와 일본과 같이 특정한 시점을 정해두고 아날로그 방송을 동시에 강제 종료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기에 정책 실패의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따라서 전국의 인구사회학적 표본을 대표하는 지역을 선정하고, 해당 지역을 대상으로 한 시범사업의 실시를 통하여 도출되는 문제를 전국 본전환 모델에 적용할 수 있는 정책 방안의 마련은 성공적 디지털 전환을 위한 필수적인 장치가 된다. 결국 디지털 전환 시범사업은 전국 본전환을 2년여 앞둔 시점에서 본전환 추진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위험요인들을 발굴함으로써 이에 대비하는 정책을 강구하기 위한 예비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전환 시범사업의 주요 쟁점
디지털 전환은 전송방식과 방송 송수신 설비의 교체와 같은 기술적 차원의 문제, 시청자들의 수신환경 개보수 및 참여,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어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고차방정식이다. 국책사업의 정책적 실패 혹은 차질은 우리나라의 대외 신인도와 정부의 대국민 신뢰 하락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며, 나아가 방송철학의 근원이랄 수 있는 시청자복지와 보편적 접근권 등의 훼손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의제라 할 수 있다. 고차방정식을 원만하게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시범사업을 통하여 도출된 문제점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책적 대응이 개발되고 이를 통해 본전환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시행착오를 줄이는 노력이 긴요하다.
해외 주요 선진국들은 디지털 전환에 따라 야기될 수 있는 사회적 혼돈을 위기 혹은 위험 요인으로 간주했다. 여기서 위기란 ‘조직의 일상적인 업무를 뒤흔들고, 조직의 미래 활동에 위협을 주며, 공중과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일련의 사건’을 말한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국가적 의제는 한 사회나 국가 단위의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하거나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으며, 시청자의 방송주권을 훼손할 개연성이 높아 보다 적극적인 위험관리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는 유형과 속성, 그리고 종류에 따라 세분화될 수 있는 복잡한 개념적 구성체이기에 위험관리의 단계 역시 복잡하고, 따라서 위험관리와 관련한 모델도 매우 다양하다. 디지털 전환 선진국이랄 수 있는 영국과 미국의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도출된 위험요인을 크게 4가지 차원이다. 첫째, 정책적 위험요인으로 디지털 전환의 주요 이해당사자 간 갈등과 리더십의 부재, 시청자 직접 지원 범위 및 규모의 추정, 디지털 전환 계획상의 문제 등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둘째, 커뮤니케이션 위험요인으로 디지털 전환 인지의 혼돈, 커뮤니케이션 지원예산 부족, 혼란을 야기하는 유료방송의 홍보, 가전매장의 잘못된 홍보 등에 대한 관리가 얼마나 잘 이루어지는가의 문제다. 셋째, 기술적 위험요인으로, 디지털방송 수신 문제, 디지털방송 설치 시설과정에서의 출력 감소에 따른 수신 장애, 공시청 설비의 개선 등이 얼마나 잘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넷째, 기타 위험요인은 수신기나 수신 장치의 공급 부족과 환경적 영향에 대한 관리를 가리킨다.
이처럼 디지털 전환 시범사업의 주요 쟁점과 평가 기준은 수신환경 개선에서부터 실제 전환된 방송프로그램의 수신여부와 품질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구체적으로, 시범사업 지역 주민들에 대한 홍보활동의 적합성과 그 결과로서 인지율의 변화는 어떠한지, 디지털 전환에 따른 기술적인 문제와 그로 인한 수신 품질은 어떠한지, 직접수신 세대 및 저소득층을 비롯한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방안은 충분하게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시범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민원이나 문의사항에 대하여 얼마나 효율적으로 대응하는가 등은 2012년 전국 본전환 성공을 담보받기 위한 필수 점검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전환 시범사업 평가와 제언
2012년 12월 31일 새벽 4시를 기하여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디지털 전환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는 것은 단순히 방송 인프라의 디지털화와 그에 기반한 디지털 콘텐츠의 활성화 차원을 넘어 미래 고화질, 고음질, 다채널, 쌍방향 부가서비스 등을 통해 방송제작과 송출, 그리고 수신에 이르는 가치사슬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이다. 앞서 논의된 디지털 전환 시범 사업의 주요 쟁점에 기반할 때, 2012년 전국 본전환 추진시 다음과 같은 쟁점들을 반드시 점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홍보 및 인지 차원의 정책적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전환이 직접수신세대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하여 성공할 수 있는 상향식 국책사업인만큼 직접수신 세대를 대상으로 한 사업의 근본적인 취지와 참여과정에 대한 보다 다각적이고 적극적인 홍보전략의 수립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나아가 이를 통한 디지털 전환에 대한 대국민 인지율을 높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직접수신 세대의 대부분인 고연령층이면서 저소득층인 점, 그리고 미디어 리터러시가 상대적으로 낮은 점을 감안하여, 이들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매체나 대인간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홍보방안이 요구된다.
둘째, 디지털 전환을 통해 기대되는 수신 품질이나 수신환경이 어느 정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보다 과학적인 실태조사가 수반되어야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디지털 방송이 본격 실시되면, 난시청 지역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지만, 실제 시범사업을 통해서 드러난 결과는 아날로그 방송 난시청 현상이 디지털 난시청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디지털 전환에 따른 실질적인 방송수신 환경이나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 디지털 전환 사업이 자칫 직접수신 세대의 경제적, 정신적 부담만 가중시키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디지털 전환이 채초에 설정한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추가적인 수신환경 개선의 노력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말해 주며, 이와 관련해서는 KBS의 공영방송으로서의 공적 책무에 대한 논의와 연동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셋째, 사회적, 기술적 약자가 대다수인 직접수신 세대의 디지털 전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지원 서비스 업무의 전문화가 필수적일 것이다. 시범사업을 통해서 단순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서비스 지원업무로는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이라는 위상에 걸맞는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따라서 보다 포괄적이면서 전문적인 서비스가 지원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넷째, 사회적, 기술적 약자를 위한 지원 사각지대가 없도록 하기 위한 행정 협력시스템의 구축이 긴요할 것으로 보인다. 시범사업에서 일부 장애인과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정보가 제공되지 않았거나, 전환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이들에 대한 정보제공 채널 자체가 확보되지 않은 미비점도 발견됐다. 디지털 전환 후에도 지형적인 이유로 난시청이 존재했으나, 이들 지역에 대한 수신환경 개선은 경제적인 이유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 대부분은 수신료와 관련한 어떠한 혜택도 주어지지 않고 있었다.
다섯째, 시범사업을 통해서 기타 다양한 문제가 드러났다. 그 중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리모컨 사용의 불편함이었다. 특히, 디지털 컨버터용 리모컨의 인터페이스와 크기, 버튼 색깔 등에서 불편함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영업장과 사업장의 디지털 미전환율이 일반 가구에 비해 높게 나타나기도 했는데, 이에 따라 지원사업의 범위를 소폭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 대상에 포함시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지역방송의 민원해결 의지를 고취할 수 있는 방안 및 기술이해도가 높은 사람들의 자가 설치 비중을 높이기 위한 전용 상담창구 개설도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디지털 전환은 사회적, 경제적 약자인 직접수신 세대를 대상으로 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우리나라 디지털 전환 정책의 기본 골격은 정책 당국이나 방송 콘텐츠 공급자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되며, 노인층, 저소득층, 그리고 사회적, 기술적 약자를 두루 아우르는 시청자 중심의 전환이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전환에 대한 지금까지의 논의가 수직적 정책 마련과 추진 그리고 예산의 집행에 초점을 두었다면, 이제부터라도 그러한 정책 집행과 추진의 최종 당사자인 직접수신 세대에게 실효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세심하고 배려적인 정책의 추가 개발과 대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일에 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시점이다.
디지털 전환 시범사업 추진 과정에서 나타난 이상의 문제 제기와 제언은 2012년 전국 본전환 모델을 체계적으로 수립하는 데 있어 필수 점검항목으로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어떤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데 있어 체계적인 로드맵과 투입된 인력의 전문성, 적정한 자본은 그러한 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필수조건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충분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자원과 요소를 어떤 방식으로 배분하고 집행할 것인가에 대한 보다 세심하고 사려 깊은 정책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때라야 디지털 전환 사업은 성공적 마무리로 이끌 수 있는 충분조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