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기고] ‘불만제로 몰카취재’ 수사할 일인가

등록일 2009-11-05 작성자 김헌 조회수 2838
[기고] ‘불만제로 몰카취재’ 수사할 일인가
 엄기열 대구대 교수 신문방송학과

최근 MBC 시사고발 프로그램 <불만제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서울의 한 유치원에 제작진 1명을 보조교사로 위장취업시킨 뒤 몰래카메라로 아이들이 유통기한이 지난 어묵과 녹슨 통에 담긴 케첩을 먹는 장면을 촬영해서 방송한 후 관할구청에 신고했다.

이에 유치원 측은 제작진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고 서울중앙지검은 몰래카메라를 이용한 취재방식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비판적인 언론을 대상으로 다양한 수사가 진행되는 현 시점에서 또 다시 검찰의 칼날이 MBC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지극히 비정치적인 사안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사실 독자들의 알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신분 사칭 및 몰래카메라 사용 방식의 취재는 ‘폭로저널리즘’의 역사적 측면에서 보면 그 뿌리가 매우 깊다고 할 수 있다.

신분 사칭형 취재는 △기자라는 사실을 단순히 알리지 않는 수동적 속임(passive deception) △다른 지위의 사람인 것처럼 가장하기(masquerading) △비리를 폭로하려고 사건을 연출하는 능동적 속임(active deception)의 세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사회의 비리와 부조리를 폭로하는 데 미국에서는 이 세 가지 취재유형이 거의 100년 넘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1979년 미라지 시리즈 기사가 사칭의 비윤리성 때문에 퓰리처상을 받지 못하게 되고 82년의 잠입취재 기사 또한 수상하지 못한 것을 계기로 신분 사칭형 취재관행은 90년대 초 권위있는 일간지에서 거의 사라지게 된다.

대신 90년대 초부터 방송에서는 신분 사칭형 취재의 한 형태로 몰래카메라 취재가 유행하게 된다.

ABC의 <프라임 타임 라이브> 제작진은 92년 식료품 체인점인 ‘푸드 라이온’이 유통기한이 지난 육류를 재가공해서 판매한다는 제보를 접한다. 제작진은 2명의 기자를 ‘푸드 라이온’에 위장취업시키고 총 45시간 분량의 동영상을 립스틱 모양의 몰래카메라로 확보, 이를 방송한다.

그 결과 ‘푸드 라이온’의 주가는 10% 이상 폭락하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된다. 이에 ‘푸드 라이온’은 ABC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 1심 지방법원 배심원들이 550만달러의 손해배상액을 ABC에 부과하면서 주목을 끌었던 이 사건은 고등법원인 순회법원에서 다시 뒤집히고 연방대법원이 심의를 거부함으로써 종결되었다.

이 사건의 최종판결은 △위장취업을 사기(fraud)로 볼 수 없으며 △몰래카메라를 사용한 것은 고용인과 피고용인 간 약속이행의무(duty of loyalty)를 파기한 것이고 △약속이행의무 파기는 기자의 출입에 대한 동의를 무효화한 것이므로 무단침입(trespass)죄를 범한 것이 되며 △수정헌법 제1조는 사기나 약속이행의무의 파기에 대한 배상을 금하는 정도까지 자유를 보장한 것은 아니지만 △‘푸드 라이온’은 ABC 프로그램의 방송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푸드 라이온’ 사건의 판결문과 유사사건의 판례를 보면 몰래카메라 사용에 따른 문제는 5가지 핵심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 해답에 근접할 수 있다.

첫째 단순히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사용하였는가, 둘째 비리를 폭로한다는 목적으로 법을 위반하거나 속임수를 사용하는 수단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셋째 사생활권 침해는 없었는가, 넷째 취재를 위해 몰래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나, 다섯째 보도될 내용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인가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몰래카메라를 사용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취재 전에 이러한 질문을 기자와 PD 자신이 던져봄으로써 자체적으로 내려야 하는 문제이지 실정법을 어긴 사람들의 고소로 검찰이 수사할 일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엄기열 대구대 교수 신문방송학과>